지리쨈🍯의 지리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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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랜만에 한껏 센치해지는 밤이다.

 

코로나 시국을 뚫고 연기에 연기를 거듭했던 신학기 개학으로 정말 힘들게 만났던 아이들을 떠나 보내는 날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센치한 기분으로 교단일기를 '온라인'에 남긴 것을 언젠가는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의 마음과 다짐을 남겨두고 싶어 글을 몇 자 끄적여본다.

 

사실 올해 고3 담임을 맡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느 정도 고생을 예상하긴 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그 '고생'이 정말 '찐고생'이 되어버리고, 남들 다 원격 수업할 때 100% 대면 수업을 하며 수업할 때마다 마스크 안에 차오르던 나의 입김과 침방울들로 뒤범벅이 되어 녹초가 되어 가던.. 힘들었던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뉴스에서 본 몇몇 선생님들이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하다 쓰러졌다는 소식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상담은 또 어떤가. 사실 옛날옛적 고3 담임을 처음 맡았을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상담 시간이었다. 상담을 통해 아이들의 진심어린 마음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고, 이 학생이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평소보다 훨씬 진솔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자신이 원래 본투비 투머치토커이기 때문에, 남일에 개입하기 좋아하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기 좋아한다는 것도 한 몫했었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 속 상담이란 역시 '마스크 속 숨 쉬기 힘든 수업'과 마찬가지의 고통이었다. 아이들과 마음이 열려갈수록 나의 숨은 점점 모자라지는.. 그런 경험ㅋㅋㅋ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을 올해 참 많이도 했던 것 같다. 특히 여름방학 때의 수업과 상담은 정말... 찌는 더위 속 더 찌고 냄새나는 나의 마스크 속 고군분투는 나 스스로도 참 '잘 이겨내었다'라고 등을 두들겨 주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그렇게 버텨내다보니 시간도 훌쩍 지나 어느새 그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날이 되었다. 사실 우스갯소리로 '아직 진짜 얼굴도 잘 모르는, 얼굴이 익숙하지도 않은 아이들을 벌써 졸업시킨다'라고 지인들에게 얘기한 적이 있는데 슬프게도 정말이었다. 아이들 중에 나의 마스크 속 얼굴을 한 번도 못 보고 졸업한다고 아쉬워 하는 아이들도 있고, 나 역시 아이들의 마스크 벗은 얼굴을 볼 때마다 흠칫흠칫 놀라게 되었으니까. 그렇지만 코로나가 만들어 낸 이 기이한 만남과 이별에도 마음은 괜스레 공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어젯밤, 정말 오랜만에 겨울방학을 보낸 아이들을 오랜만에 보고 난 뒤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이대로 벌써 졸업이라니. 우리 사이는 아직 많은 시간이 있는 것 같은데 벌써 이별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잠들기 전에 잠시 편지를 써볼까 고민하며 첫 문장을 쓰다 잠들었다. 

 

편지는 오늘, 졸업식 당일 아침까지 열심히 작성해보았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여, 12년간의 기나길고 지루했을 수도 있는 학창시절을 마치며 새로운 시작을 앞둔 아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여러 번 고민하고 쓰고 지우고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편지 한 통을 완성했다. 아이들에게 졸업장을 나누어준 뒤 마지막 편지를 낭독하고 헤어져야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 선 나는 결국 그 편지를 읽지 못했다. 꾸깃꾸깃 가져간 편지엔 사실 별 내용이 없었지만, 아이들 앞에서 한 문장씩 소리내어 읽다간 눈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교사란 매년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고 매년 그 아이들을 떠나 보내는, 그리고 역시 동료들도 매년 새로 만나고 떠나보내는 과정을 통해 성장해나가는 인격체일 수 밖에 없지만, 아무리 반복해도 이별은 익숙해지지 않는 듯하다. 모두 마스크를 쓴 채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보니 결국 편지는 읽지 못하고, 짧고 간결하게, '앞으로도 지금처럼 행복하고 즐겁게 잘 살아가자'라는 말로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어려운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가장 밝은 아이들이 우리 반 아이들이었으니.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즐겁게, 유쾌하게 인생의 여러 굴곡을 파도 서핑하듯 즐기며 나아갈 수 있는 아이들이라고 믿는다. 

 

나는 오늘 밤, 이 미련 가득한 글을 끝으로 2021년 새롭게 맞이할 아이들을 만날 마음의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 졸업한 우리 반 아이들도 이제 우리 학교, 우리 반은 기억 저 너머로 하나씩 보내며 '대학'이라는, '사회'라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향해 걸어갈테지만, 또 이 추억들을 소중히 여긴다면 이 길의 어딘가쯤에 다시 만날 것을 알고 있기에 행복하게 다시 길을 나서야겠다. 아이들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 2021년 모두 꽃길만 걷게 되길. 오늘 밤은 바람이 조금 따뜻해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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